학창 시절에 나는 수학을 정말 못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수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특히 ‘설명’할 때 고등 수학에 나오는 ‘사분면’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사분면은 ‘4개의 면으로 나눈 것’인데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X축과 Y축으로 4분할된 그래프를 접하지 않는가? 바로 그것이다. 설명할 때 활용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운동량이 많은 학생일수록 시험 점수가 높은 경향을 보인다’를 설명한다고 하자. 이때 ‘운동량이 많을수록 시험 점수가 높다’라는 말만 들으면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이를 그림과 같이 사분면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_<032쪽>에서

하지만 일류는 이보다 한 발 더 앞서 나간다. ‘숫자를 두 개나 사용’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번 실험에서는 3건의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전체의 2%입니다.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실험을 더 진행할 수 있도록 허락을 부탁드립니다.” 3건이라는 숫자는 전체의 2%라는 숫자 덕분에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번 분기의 매출 달성률은 102%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년대비 98%입니다. 원인은….” 일반적으로 경영자는 전년대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매출액보다 매출 신장률을 더 신경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는 이전 분기와 이번 분기, 두 개의 숫자가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일류는 숫자로 설명할 때 기준이 될 다른 숫자를 하나 더 언급한다. 그러면 듣는 사람에게 훨씬 더 잘 전달된다. ‘그렇지 않아도 숫자에 무척 약한데 두 개나…’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숫자로 설명하는 방법은 익숙하느냐, 익숙하지 않느냐의 문제로 누구나 습득할 수 있다.
_<037쪽>에서

상황에 따라서 설명할 시간이 ◯◯분, ◯시간 정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때는 먼저 시간을 제시한다. ‘오늘 이야기는 6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께 아주 중요한 소식이 있거든요’라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미리 말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안심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만일 시간이 걸리는 이유도 함께 전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렇듯 설명하기 전에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허용되는지’, 즉 상대방의 허용 시간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상대방을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자기중심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설명 시간을 설정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곧바로 배려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설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웃이다. 배려 있는 자세는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상대방의 상황에 맞춘 커뮤니케이션이 일류의 세계로 나아가는 등용문이다.
_<056쪽>에서

그렇지 않다.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예를 들어 사장이 회사를 창업한 목적과 이념, 비전, 미션 등을 직원들에게 전달한다고 해서 모든 직원이 감동하거나 자발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소위 말하는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일’이 있다. 또한 뭔가를 설명할 때 ‘항상 목적부터 이야기하지만 좀처럼 사람들이 협력해 주지 않는다’라는 푸념도 듣는다. 목적을 전달했는데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바로 ‘목적과 개인의 관계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치에 맞는 선한 목적을 이야기해도 그것이 본인(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없다면 사람은 의욕을 갖고 움직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업계의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라고 말해도 그 프로젝트가 실현되어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없다면 의욕의 불꽃은 피어오르지 않는다.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많은 기술을 익힐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을 수 있다’, ‘생활이 풍요로워진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 등 개인에게 이득이 되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퍼포먼스 사례로 스티브 잡스…
_<093쪽>에서

‘이야기가 어긋난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같은 건물에 있지만 서로 다른 층에 서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즉 서로 다른 ‘이야기의 층’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층’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싶을 텐데 간단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사내 회의에 ‘인감을 없애고 전자결재로 바꿉시다’라는 제안을 했다고 하자. 그랬더니 ‘인감을 없애는 것은 반대입니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인감을 없애는 것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등 다양한 반대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렇게 되면 의견을 취합하기 어렵다. 이때 만일 ‘이해력이 한참 모자라는 사람들이군!’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류다.
_<112쪽>에서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하므로 일단 1단계를 적용해 보자. ‘만일 광고비를 두 배로 하지 않았다면 매출은 두 배로 늘지 않았다’라고 역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다른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다음은 2단계다. 매출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은 ‘시기가 좋았다’, ‘디자인이 호평을 받았다’, ‘특별 캠페인이 소비자에게 잘 먹혔다’, ‘영업부에서 최선을 다했다’ 등 광고비 이외의 다른 이유를 검증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큰 이유를 선택해서 설명한다. 물론 끝까지 파헤쳐도 ‘100% 그렇다’라고 장담할 수 있는 원인을 특정하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것을 조사하려면 막대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단순하게 ‘그런 경향이 있다’라며 단순한 근거를 들어서 설명하면 곧바로 추궁을 당할 것이다.
_<118쪽>에서

결론에 이르기까지 스토리 전개에 재미가 없으면 상대방의 집중력은 떨어지고 답답하게 만들 수 있다. ‘서론은 이제 그만 됐으니 빨리 결론을 말해 달라’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결론형과 전개형은 일장일단, 각각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일류는 듣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결론형과 전개형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결론형】 이야기 내용에 관심은 있지만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는 결론부터 말해야 한다. 어차피 상대방은 이야기 내용을 빨리 듣고 싶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데 만일 아무 관련도 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면 상대방은 들으려는 마음을 접을 것이다.
【전개형】 이야기의 내용보다 당신에게 관심이 있거나 당신에게 호감이 있는 경우는 체험담, 생각,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배경 등을 먼저 말한다. 결론을 맨 마지막에 두는 패턴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과거 1만 회에 달하는 세미나와 연수를 진행했다. 기업 연수를 진행할 때 대부분의 경우 강사와 수강생은 처음 만난다. 이때 강사가 처음부터 장황하게 자기소개를 늘어놓으면 수강생은 ‘빨리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라고 느낀다. 삽시간에 강의실은 무겁고 따분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수강생의 반응은 싸늘하게 식고 만다.
_<127쪽>에서

무엇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은 어디인지 등을 살피는 것이다.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짧게 5분이라도 좋으니 최선을 다해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우리 회사가 운영하는 스쿨에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이 다수 소속되어 있는데 카운슬링(counseling)을 배울 때 제일 처음으로 철저하게 훈련받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경청(傾聽)’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힘’을 철저하게 갈고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듣는다’라고 말하면 수동적인 자세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듣는다’는 것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과도 같다. 그야말로 수신과 발신을 겸비한 행위다. 이것이 바로 ‘경청’이다. 내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입사한 직장은 2004년에 도쿄 증시 1부에 상장한 회사였다. 그런데 2008년에 폐업하고 말았다. 2,000명이 해고되는 큰 사건이었다. 당시 나는 폐업 처리를 담당하는 팀에 소속되어 폐업 경위를 직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상사와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게 된 직원들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설명회장은 ‘지금 장난해?’, ‘무슨 소리야?’라는 험한 말이 오가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눈물바다가 되는 곳도 있었다.
_<199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