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다양한 질문과 대답을 통해 지식쌓기
인간은 다양한 인격을 가진 행위 주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여러 관계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을 동물과 비교해 보는 것(생물학적 인간학)도 가능하고,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써 연구하는 것(이성적 인간학)도 가능하다. 인간은 욕망의 만족을 추구하면서 전적으로 생물학적 수준에서 삶을 영위할 수도 있지만, 자
연을 능가하는 정신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여러 해석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은 규범적·가치적 의미로써 주로 규정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 이래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철학의 주된 관심의 하나로, 많은 철학자의 연구 대상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특히 인간은 ‘이성적 존재인가 아니면 욕망하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은 인식론 영역의 핵심 주제로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논쟁으로써 지금까지 사상가들 사이에서 활발한 논의가 거듭되고 있다. 인간학은 인간의 본질을 문제 삼아 전(全) 인간을 해명해 보려는 학문이다. 철학적 인간학을 개척한 독일의 철학자 셸러는 “철학적 인간학은 인간에 관해서 많은 과학자가 얻어 낸 풍성한 개별 지식을 근거로 하여 인간의 자기의식과 자기 성찰에 관한 새로운 형식을 전개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격’이란 종교적, 법률적, 철학적 원천으로부터 점점 다양하게 발전해 온 개념이다.

공동체는 특정 사회 공간 안에서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
철학에서 공동체는 사람들이 더불어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 사람이 타자와 함께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과 인간의 실존적 의미 간에 어떤 관련을 갖는가와 깊이 관련한다.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는 혈연공동체로, 개인의 생존과 집합적 재생산을 위한 중요한 조직 단위이다. 넓은 의미로는 구성원들이 서로 어떠한 관계를 맺는 인적 결합체로, 가족이나 마을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혈연이나 지연 또는 공동의 이해관계나 특정한 목적을 바탕으로 형성한 모든 사회집단을 일컫는다. 오늘날의 공동체는 새로운 문화적 토양 위에서 형성되어가고 있다. 구성원들은 자유와 개성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더불어 잘사는 삶을 추구한다. 공동체적 가치는 단순한 ‘이상(理想)’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상호성을 배려하는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도시 공간 구조가 그것이다. 공동체적 가치를 높이면서도 구성원 각자의 자유와 자질과 역량을 활기차게 표현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한 것이다.

단독이 아니라 군중으로 행동할 때 극히 이성적일 때도…
양면성을 지닌 존재, 군중
군중(群衆)은 공통된 규범이나 조직성 없이 우연히 조직된 인간의 일시적 집합을 말한다. 사용자에 항거하는 노동자의 집단, 지배층에 반대하는 대중, 운동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관중, 각종 행사에 참여한 시민이 ‘군중’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군중은 공통적인 규범이나 조직성이 없다는 점에서 ‘사회집단’과 구별된다. 사람들이 공통적인 관심의 대상을 가짐으로 성립하지만, 그 관심의 대상은 어디까지 일시적인 것으로, 그것이 없어지면 자연히 소멸한다. 군중은 또한 일시적인 집단인 ‘공중(公衆)’과도 다르다. 공중이 일정한 공간에서 집결함 없이 간접적인 접촉을 따라서 성립하는 데 대하여 군중은 직접적인 접촉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서 공중의 이성적 측면과 대치되는 격정적 군중심리가 일어난다. 즉 군중은 특정 목적에 따라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간의 우연적인 요소로 결합하므로, 사람들은 군중 틈에서 익명성을 가지며 무책임하고 맹목적인 행동을 취하기 쉽다. 이러한 이유에서 군중 특유의 ‘군중심리’가 형성되는 것으로, 사람들은 특히 도시에서 이름 없는 익명의 집단으로 행동하면서 정치적인 힘을 갖는다.


플라톤은 “정의는 선의 이데아를 완성하는 것”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정당한 불평등을 향한 평등”
정의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보편타당한 생활 규범이자 절대 이념을 말한다. 법이 공동체의 질서라면, 정의의 과제는 공동체의 질서를 수호하는 것으로, 정의의 개념은 법률 및 권리의 개념과 연계하여 발전해 왔다. 정의의 개념은 학자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정의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정의’라고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본질은 ‘형식적 평등’이라고 말했다. 울피아누스는 정의는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리려는 항구적인 의지’라고 했다. 롤스는 정의는 정당화될 수 없는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의에 관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종합할 때, 정의로운 사회란 그 구성원들이 자기 역할과 의무를 다한 후,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온전히 받는 사회를 말한다. 정의는 다른 많은 도덕적 가치, 특히 ‘선(善)’과 비교할 때 현대에 와서 더욱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치다. 평등의 실현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로도 여겨진다. 오늘날 정의에 대한 물음은 ‘공정(公正)’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양한 지식을 그 내적 필연성에 기초하여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과학’이다
지식은 어떤 사물에 대한 명료한 의식과 그것에 관한 판단을 말한다. 광의적인 의미로는 사물에 관한 개개의 단편적인 사실과 경험적 인식을 말하며, 협의적으로는 원리와 통일성에 따라 조직되어 객관적 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 판단 체계를 일컫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지식(앎, 에피스테메)’은 신화로부터 이탈하면서 하나의 독자적인 현실 파악의 대상으로써 구성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칙에 대한 ‘앎’으로서 철학을 기본학문의 위치로 끌어올렸고, 이후 앎의 철학, 즉 인식론은 다른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었다. 지식과 인식은 다르다. 지식은 인식보다 더 큰 외연을 가진다. 인식이 정확히 정의된 대상에 대한 앎을 뜻한다면, 지식은 특정 영역에서 형성된 정보의 조직된 전체(과학적 지식) 또는 특정 능력을 함양하는 정보나 행위의 터득(실천적 지식)을 뜻한다. 철학적 담론에서 지식은 인식, 담론, 실천, 탐구방법의 집합을 가리키기도 한다. 지식은 무지, 의견, 믿음과 대립한다. 그러나 지식이 합리적인 인식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감각적인 인식과 관찰과 경험은 지식 형성에 크게 기여한다. 거의 모든 철학자는 지식의 본질, 가능성과 조건, 차이에 관심을 둔다.